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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맹자의 어린 시절, 천하유랑, 성선설, 왕도정치

by 준쭌 2024. 4. 3.

맹자는 어릴 때부터 공자를 숭상했습니다. 의(義)를 인(仁)의 위치에 격상시켜 공자의 사상을 보충, 발전시켰습니다. 의로움(義)은 사람다움(仁)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가야할 길로 맹자의 핵심 사상입니다. 누구나 갖는 선한 마음, 의로움으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는 맹자의 어린 시절, 유랑, 성선설, 왕도정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맹자의 어린 시절, 성선설, 왕도정치, 역성혁명론

맹자의 어린 시절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맹자의 전국 시대 추나라 사람으로 본래 이름은 맹가(孟軻)입니다. 그는 기원전 372년부터 기원전 289년까지 살았다고 추정됩니다. 전국시대 노나라 출신입니다. 맹자는 맹모삼천지교와 맹모단기지교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맹자의 어머니가 많이 알려져 있죠. 맹자가 어렸을 때 따라하기를 좋아하고 잘 했습니다. 묘지 근처에서 살았을 때 제사 때 제사 지내는 것이나 곡소리 내는 것을 따라했습니다. 맹자 어머니는 아니다 싶어서 시장 근처로 이사 갑니다. 시장 상인들의 물건 파는 소리를 흉내내는 맹자를 보고 어머니는 다시 이사를 갑니다. 서당 쪽으로... 그러자 맹자는 글 공부를 따라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환경이 성장에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가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맹모삼천지교입니다.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

맹모단기지교(孟母斷機之敎)라는 말도 있습니다. 맹모삼천지교의 2탄입니다. 맹자가 집을 떠나 학문을 수행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맹자는 향수병에 갑자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와 보니 어머니는 베를 짜고 있었습니다. 돌아온 맹자를 보고도 반가워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기별도 없이 돌아오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맹자가 대답하길, “어머님을 뵙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이에 어머니는 “학문은 얼만큼 갈고 닦았느냐?” 맹자가 답하길 “아직 마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짜고 있던 베틀의 날실을 갑자기 잘랐습니다. 맹자가 깜짝 놀라서, “아니, 베틀의 실은 왜 갑자기 자르십니까?” 하고 묻자 어머니는 맹자를 꾸짖었습니다. “네가 학문을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온 것은 내가 지금 짜고 있던 이 베의 실을 끊은 것과 같느니라.” 맹자는 이 말에 부끄러운 마음에 다시 돌아가 학문에 정진하여 훌륭한 학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맹자의 천하 유랑

학문을 크게 진작시킨 맹자는 나이 40세 경에 많은 제자들과 천하를 유랑하였습니다. 먼저 위나라에 갑니다. 당시는 난세였고 많은 나라의 지도자는 부국강병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맹자는 눈에 보이는 부를 늘리거나 군대를 강화시키기 보다는 덕을 베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눈앞의 부국강병을 지도자들에게는 어디에서도 기용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맹자는 그럴 듯한 논리적인 화술로 왕들을 설측시겼습니다. 그의 이상적인 사상은 왕과의 갈등이 계속되었습니다. 덕을 베풀라고 하니 왕은 탐탁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맹자는 그 길이 옳다고 믿었습니다. 스스로 공자의 신념을 계승했다고 자부했습니다.

맹자의 성선설, 왕도정치 그리고 역성혁명론

맹자는 자신의 이상적인 사상을 발전시키며 유교 사상을 형성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공자의 이념을 보완하고 정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여 인간의 본성이 선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통해 선악을 구별하는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선한 행위는 단순히 그 '선함'을 배운다고 되는 것은 아니며, 선한 행위는 사람의 감정에서 출발해야 보다 더 자발적이게 되고 그 동기는 더욱 강해진다는 것이 맹자의 성선설이다 맹자는 또한 "왕도"를 주장하여 왕이 덕을 갖추고 백성을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힘으로써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덕을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맹자의 사상은 그의 책에서 명확하게 나타나며, 후대에도 그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현재에도 맹자의 사상은 중국 철학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유교적 민본주의(民本主義)를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됩니다. 맹자는 왕 앞에서 대놓고 '잘못된 왕은 갈아 엎어야 한다', '백성을 착취하는 왕과 관료들은 도둑놈이다' 라는 말을 서슴없이했습니다. 또한 모든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의 권위를 마냥 인정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면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맹자의 가르침의 후대 영향

맹자는 그의 이상적인 사상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선악을 가르치고 지도자들에게 바른 통치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맹자의 책에는 그의 사상을 담은 다양한 이야기와 논리가 담겨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후세에 그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맹자의 사상은 유교의 핵심 원리로 자리 잡았고, 그의 이념은 후대의 인류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책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그의 논리와 사고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