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이름은 성은 고타마 이름은 싯다르타입니다. 석가족의 성자라는 뜻입니다. 한자어 또는 한자 표기로는 석가모니라고도 합니다. 붓다는 깨달은 자라는 뜻입니다. 한자 표기로는 부처, 세존석존, 여래 등 다양한 존칭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붓다의 일생, 깨달음, 설법, 가르침에 대해 알아봅시다.
붓다 출생 당시의 인도사회
인도에는 신분제가 있습니다. 고대부터 시작된 4신분제 입니다.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그리고 수드라입니다. 브라만 계급은 베다를 가르치고 제사를 주관합니다. 크샤트리아는 정치를 하며 베다를 배웁니다. 바이샤 계급은 베다를 배우고 장사를 하며 가축을 기릅니다. 수드라 계급은 오직 복종만 합니다. 이 제도는 기원전 1500년경부터 고대 인도를 지배한 사상입니다. 이 사상에 의하면 천민 계급인 수드라가 베다를 암송하거나 엿들으면 혀를 자르거나 귀에 쇳물을 부었습니다. 당시 종교는 힌두교의 원형인 브라만교였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문이라는 새로운 세력들이 등장해서 다양하고 새로운 철학과 사상을 제시하고 신분제를 부정하기도 했습니다. 사문들의 추구하는 방향은 다양하고 극에서 극을 치닫기도 했습니다. 불교의 창시자인 붓다는 극단보다는 중도의 길을 추구했습니다. 수행끝에 진리를 깨우치고 신분에 상관없이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을 깨우치고자 마음먹습니다.
붓다의 일생
출생
붓다는 기원전 624년 인도 북쪽 현재 네팔 지역에서 카필라 국의 왕자로 태어납니다. 붓다가 태어날 때쯤 미래의 나라를 다스릴 위대한 왕이 출가해 인류를 구원할 인물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있었습니다. 붓다는 태어나자마자 앞으로 일곱 걸음 걸어가더니 한손으로는 하늘을 다른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천하의 내가 가장 존귀하며 괴로움으로부터 편안케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왕이었던 아버지는 붓다가 커서 위대한 왕이 되길 바랬습니다.
유년기, 청소년기, 청년기
붓다는 풍족한 환경에서 왕이 될 교육인 다양한 언어와 학문 그리고 무술을 배웁니다. 12살이 되던 해 붓다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 서로를 죽이며 고통을 받는지 함께 살 방법은 없는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19살이 되었을 때는 야쇼다라 공주와 결혼합니다. 20살이 된 붓다는 고통을 직접 목격합니다. 성의 동남서북 4개의 문중 먼저 동문으로 나간 붓다는 노인을 보았습니다. 누구나 늙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남문에 가니 고통받는 병자를 보았습니다. 서문에서는 죽은 자를 보았고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북문에서는 출가수행자를 만납니다. 고통에서 벗어날 희망을 갖게 됩니다. 이후로 붓다는 고통이 무엇인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이에 반해, 아들이 자꾸 만사색에 잠겨 있으니 아버지인 완은 혹시나 출가하진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호화로운 환경을 조성해주고 환락에 빠지게 해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길 바랬습니다.
출가, 고행 그리고 깨달음
붓다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29살 때 출가를 결심합니다. 붓다는 출가 후 3명의 스승을 만납니다. 고행을 닦는 스승과 명상을 하는 스승이 있었습니다. 수행 방법에는 고행과 명상이 있었던 것이죠. 붓다는 이들에게 배우다 스스로 고행이라는 수행을 하게 됩니다. 고통을 감내하면서 업을 걷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단식은 기본이었습니다. 몸이 가죽만 남을 정도였습니다. 6년 동안 고행 끝에 결국 포기합니다. 극단적인 방법으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붓다는 목욕을 하고 핍팔라 나무 아래에서 깊은 명상에 빠져듭니다. 온갖 마음속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35살의 나이에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붓다는깨달은 진리를 어떻게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고민 끝에 붓다는 중생들에게 널리 깨달음을 전파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설법, 마지막 설법
붓다는 먼저 옛 친구 5명에게 설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붓다에게 가르침을 받으러왔죠. 가족들도 붓다의 귀의했습니다. 교단은 규모는 점점 커져갔죠. 많은 비구들을 받아들였습니다. 마하파자파티라고 하는 사람이 최초의 여성스님 비구니가 됩니다. 붓다는 45년 동안 설법을 합니다. 천민부터 왕조까지 헤아릴 수 없는 이들이 붓다에게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잘 알려진 10명의 제자는 훗날불교 전파에 큰 역할을 합니다. 생의 마지막 공양을 받고 몸이 쇠약해져 생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설법을 합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 의지하고 진리를 등불로 삼아 의지하라 모든 것은 소멸한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붓다는 8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납니다.
붓다의 진리 근본불교의 핵심, 연기법(緣起法)
연기법은 모든 것은 원인과 결과가 있다는 진리입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가다 늙어 죽는 과정이 그렇습니다. 이 과정을 12연기(十二緣起)로 풀어냅니다. 윤회를 뜻하기도 합니다. 괴로운 삶이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 열반이자 수행자의 목표입니다. 붓다는 연기법을 깨달았지만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진리를 쉽게 전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사실 붓다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 삶에 괴로움을 없애는 것이죠.
붓다의 깨달음과 가르침, 무아(無我), 오온(五蘊),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무아(無我)
브라만 교에는 아트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아트만은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윤회하는 또 다른 진짜 나라는 뜻입니다. 붓다는 아트만보다는 고정된 내가 따로 있는 것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만물은 항상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고정된 실체가 없는 날을 무아(無我)라고 합니다. 무아(無我)의 핵심은 내가 있나 없나 하는 한가한 고민보다 괴로움을 없애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내 영혼이 어디 있고 죽으면 뭐로 다시 태어나는가 하는 고민은 붓다에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진리는 오직 괴로움과 괴로움의 해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무아(無我)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독화살을 맞았으면 얼른 빼야 하는데 이 화살이 어디서 날아왔을까 고민하는 것은 도움이 안됩니다. 붓다는 먼저 독화살을 빼라고 말합니다. ‘무아(無我)’가 바로 독화살을 빼낸 상태입니다. 현실 속 괴로움을 빼낸 상태를 표현한 개념입니다. 영혼이나 사후세계가 존재하는가 안 하는가를 따지며 난해하게 접근하는 것은 독화살을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것이 번뇌죠. 쉽게 말해 무아는 생각, 감정, 오감을 나에게서 떼어낸 상태이며, 깨달음의 상태입니다.
오온(五蘊)
인간의 생각, 감정, 오감을 5가지로 구분해 오온(五蘊)이라고 합니다.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색은 물질, 수는 느낌, 상은 인식, 행은 형성, 식은 의식입니다. 나 자신은 오온(五蘊)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자아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오온(五蘊)에 집착하는 것은 괴롭기 때문입니다. 오온(五蘊)은 내 마음대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변합니다. 어제와 오늘의 나는 생각과 감정이 다릅니다. 오온(五蘊)이 달라집니다. 한순간 행복도 지나가고 한순간 불행도 지나갑니다.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을 자꾸 붙잡으려 하니 괴롭다는 말입니다. 붙잡지 말고 내려놓은 상태가 무아(無我)입니다. 애초에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죠.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니 오온(五蘊)에 집착하는 나는 내가 아닙니다. 때문에 그냥 내가 없다라는 해석보다는 ‘오온(五蘊)에 집착하는 나는 내가 아니다’가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쉽게 말해 내 생각, 감정, 오감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세가지를 삼법인이라고 합니다. 영원한 것이 없는 무상(無常) 그래서 괴로울 고(苦), ‘이것들은 내가 아니다.’라는 ‘무아(無我)’입니다.
사성제(四聖諦)
붓다는 그 실천 방법으로 사성제를 제시합니다. 사성제는 괴로움의 원인과 그 해결책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고제(苦諦) · 집제(集諦) · 멸제(滅諦) · 도제(道諦)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줄여서 고집멸도(苦集滅道)라고 합니다. 먼저 괴로움이 정체를 파헤치는 고성제(苦聖諦)를 살펴보겠습니다. 붓다는 삶이 괴로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괴롭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과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온에 집착하는 것이 괴로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꾸 오온에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원인이 집성제, 욕심입니다. 갈애(渴愛)라고 합니다. 갈망, 갈증같은 것이죠.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갈애(渴愛)를 불러일으킵니다. 이 세 가지를 탐진치(貪)·진(瞋)·치(癡)라고 합니다. 마땅히 버려야 할 것 들입니다. 특히 어리석음이 문제입니다. 사성제를 모르고 현상이 집착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입니다. 현상에 집착하는 것은 탐욕이고 탐욕이 충족되지 못하면 화가 납니다. 사성제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가래가 생기고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죠. 한마디로 정리하면 괴로움은 갈애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괴로움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하면 업이 반복된다고 합니다. 괴로운 삶을 이어가는 윤회를 말하죠. 하지만 끊어낸다면 그것이 바로 열반입니다. 세번째로 멸성제입니다. 앞서 집성재는 버려야 할 것들입니다. 마침내 잘 버렸다면 열반에 들 수 있습니다. 멸성제 즉 열반은 수행자가 이르는 최종 목표인 셈이죠. 열반은 번뇌의 불이 꺼졌다는 뜻입니다. 깨달음에 이르러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다는 의미죠.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될까요 고성제에서는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았고 집성지에서는 괴로움의 원인을 알았으며 열성제에서는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도성제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도성제는 중도의 길로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입니다. 어떤 수행을 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극한의 고행만이 답도 아니고 극한의 쾌락도 답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이 적절점을 찾는 중도의 길입니다.
팔정도(八正道)
그 수행법으로 팔정도를 제시합니다. 실천해야 할 8가지 방법이죠.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정명(正命)·정념(正念)·정정진(正精進)·정정(正定)을 말합니다. 8가지나 되지만 간단히 세 그룹으로 묶을 수 있습니다. 먼저 바른 견해, 정견(正見)은 사성제를 아는 것입니다. 바른 사유, 정사유(正思惟)는 사성제를 탐구해 탐진치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를 지혜, 혜(慧)로 묶을 수 있습니다. 바른 말, 정어(正語)는 거짓말, 폭언, 욕설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른 행위, 정업(正業)은 살생, 도둑질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바른 생계, 정업(正業)은 피해주면서 생계를 유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계율, 계(戒)로 묶을 수 있습니다. 바른 정진, 정명(正命)은 해로운 법을 버리고 유익한 법을 취하는 것입니다. 바른 기억, 정념(正念)은 유익한 법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바른 집중, 정정(正定)은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선정, 정(定)으로 묶을 수 있습니다. 팔정도는 탐진치를 없애는 방법입니다. 탐진치는 완전히 없어질 수는 없기도 하고 다시 생겨날 수도 있습니다. 항상 팔정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실천으로 탐진치가 걷히기 시작하면 오온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집착이 사라지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붓다는 깨달음을 얻은 이후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는 괴로움의 발버둥 치는 이들을 가엾게 여겼습니다. 신분에 관계없이 모든 중생이 깨달음을 얻어 고통없이 더 이상 괴롭지 않고 평안했으면 했습니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자의 생애, 저서, 정치철학, 장자와의 비교 (0) | 2024.04.04 |
---|---|
맹자의 어린 시절, 천하유랑, 성선설, 왕도정치 (0) | 2024.04.03 |
장자의 사상, 불교, 유교와의 비교 (0) | 2024.04.02 |
공자 그는 누구인가 일생, 사상, 제자, 불교, 장자와의 비교 (0) | 2024.04.02 |
윤리학의 다양한 측면 법률, 메타, 기술, 이론, 실천 윤리학 (0) | 2024.04.01 |